돌아온 번역 보존 시리즈 2
이건 지난 학기 문화와 글쓰기에서 썼던 글이다.미국에 한 번도 가본 적도 없는 사람이 미국 텍스트를 미국 정치관으로 해석한다는게 우습게 느껴진다.
진짜 미국인이 보면 순전히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걸까봐 두려움ㅠㅠ
<무지의 기능>
포레스트 검프를 보고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1994년에 개봉되어 엄청난 흥행 성과를 거두었다. 주인공 포레스트는 보통 사람들보다 낮은 IQ를 가지고 있지만 그가 가진 우직함과 정직함 덕분으로 미국 현대사의 물결을 헤쳐나가 끝내는 성공한다.
겉보기에 영화는 가슴 따스한 휴먼드라마로만 보일 수도 있으나, 평론가들은 포레스트 검프가 무척 정치적인 영화라고 평가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백인 남성인 포레스트의 시선을 통해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는 반면 여성, 흑인, 진보주의자 등 60년대 시민권운동(civil right movement)의 주역들의 공헌을 간접적으로 폄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사를 이러한 시각에서 재정의하기 위해서 영화는 다양한 극적 장치들을 활용한다. 특히 포레스트의 무지는 보수적 이념을 전달하기 위해 가장 사용된 도구이다.
포레스트의 낮은 지능은 그를 약자로 보이게 만들고 나아가 백인 남성으로서의 기득권을 은폐한다. 영화는 포레스트가 착한 사람인데도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와 모욕을 당하는 희생자로 묘사한다. 흥미로운 점은 시민권운동을 이끌었던 사회적 약자들이 포레스트와의 관계에서는 가해자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존 체제에 불만을 품은 여성 제니는 항상 포레스트로부터 도움을 받으면서도 극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그의 진정한 사랑을 외면하고 도망치기만 한다.

그리고 Black Panther Party(이하 BPP)나 Students for Democratic Society(이하 SDS)와 같은 진보주의자들은 그들의 주장을 강요하고 포레스트의 연인에게 폭력을 행하는 위협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또한 버스정류장에서 포레스트의 옆에 앉았던 흑인 여성은 포레스트를 깔보는듯 그가 말을 하는 도중에 가버린다.
이 일련의 묘사들은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왜냐면 포레스트는 단순히 몸이 불편한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 명백히 기득권에 속하는 부유한 백인 남성이다. 또한 그는 영화 내에서 전통적인 가치의 대변자이기도 하다. 홀로 떠돌아다니며 히피 생활을 하는 제니에게 포레스트는 "집으로, 알라바마로 돌아가야 해" 라고 타이르는데, 알라바마는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적인 지역이라는 생각하면 이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이외에도 다양한 장면들은 포레스트가 정치적인 의도를 띠고 만들어진 캐릭터임을 알려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영화가 포레스트를 약자로 묘사하는 것은 기득권층이 소수자들을 억압했고, 그 차별에 의해 시민권 운동이 일어났다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려는 간접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로 비춰질 수 있다.
또한 무지한 포레스트가 단편적인 면들만을 이해하고 있기에 저항적인 사회적 소수자들은 비이성적인 인물들로 묘사된다. 1960년대 저항문화는 자본주의, 애국주의, 인종차별, 냉전체제와 같은 전통적인 미국 사회에 대한 반발로부터 시작되었다. 민주 사회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얻기 위해, 사회적 약자들은 기존의 체제에 맞서 다양한 방법으로 투쟁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포레스트 검프에서도 등장하지만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베트남전에 반대하기 위해 학생 운동가들이 주도한 1967년의 펜타곤 행진은 우습게 표현된다. 포레스트의 나레이션을 통해 학생 지도자는 'F word를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시위참가자들은 그런 F word에 열광하는 어리석은 군중들로 격하당한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 BPP의 운동가는 백인 병사인 포레스트에게 공격적인 태도로 알아들을 수 없는 설교를 쏟아낸다.
그러나 이러한 피상적인 묘사만으로는 왜 그들이 그토록 화가 났는지 관객들은 이해할 수 없다. 저항의 근본적 원인인 미국의 기존 체제의 부조리함을 영화는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포레스트의 무지는 이 선택적인 묘사의 가장 큰 원인이다. 포레스트는 억압당하고 억압받는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이해할 지능이 없다. 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역시 알지 못하지만, 그가 모른다고 해서 미국 사회에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화자인 포레스트의 시선에 갇힌 관객들은 갈등의 원인인 전통적 사회의 부조리함은 보지 못하면서, 갈등의 결과인 사회적 약자들의 격렬한 저항만을 보게 된다. 결과적으로 영화에서 저항문화 운동은 역사적 흐름에서 유리되고 단순히 이기적인 행동으로만 비춰진다.
SDS의 포트휴런 선언문 (Port Huron Statement)은 미국 뉴레프트 운동의 매니페스토가 된 선언문이다. 이 글을 쓴 Tom Hayden은 시민들의 '무관심(apathy)'을 민주주의 실패의 주범으로 지목한바 있다. 포레스트 검프는 정말로 기존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해 알지 못한 것일까? 잃을 것 없는 기득권인 그는 어쩌면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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